"최선책 뭔지 고민해야"…힘 받는 '기금 역할론' [자본시장 새 먹거리 OCIO 대해부③]

입력 2022-10-29 07:14   수정 2022-10-29 07:15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은 급격한 성장 때문인지 벌써부터 문제가 만연화되는 분위기다. 비합리적인 보수율, 의무화되다시피 한 전담체계, 독과점 우려 등이다. 시장에서는 기금들이 OCIO 시장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의사결정 주체인 위탁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는 한 현실적으로 개선되기 어려운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금 입장에선 업계의 이런 불만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여윳돈을 잘 굴리기 위해 트랙레코드(운용경력)이 풍부한 대형사를 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사가 시장을 독점한다고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수율을 낮춰도 참여 기업들은 여전한 상태다. 때문에 갑자기 보수를 높일 유인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는 사이 시장은 특정 운용사나 증권사로 기금 여윳돈이 쏠리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후발주자들의 시장 진입은 갈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금 운용은 당장 국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려지만, 직간접적으로 자산에 영향을 미친다. 연기금투자풀과 산재보험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기금 대부분이 비슷한 기준으로 뽑다보면 운용방식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최근과 같은 증시 하락장이나 위기 상황에서 방어력을 갖추기 어려울 수 있다.

OCIO 시장을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위탁자가 시장 성장을 위해 굳이 운용경력이 부족한 기업을 뽑을 유인은 없다"며 "위수탁 관계에선 위탁자 입장이 우선이며 수탁자는 '선의의 수탁자'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저보수·전담체계 손봤으면"…기금 향해 한 목소리
시장에선 학계·연구계의 도움을 받고 있다. 기금을 설득할 논리를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시장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다. 우선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금이 운용기관을 선정할 때 '사업자 다양성' 또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 평가항목대로라면 △기업규모가 크고 △전담으로 배치할 수 있는 인원수가 많고 △앞선 OCIO 사업에서 양호한 운용성과를 냈고 △비교적 낮은 운용보수율을 제시한 곳일수록 선정 가능성이 크다. 기금 유치 이력이 적거나 없는 후발주자와 중소형사로선 항목 한 개도 제대로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주간사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어내려면 독점 체제를 지양하고 기업들이 서로 건전히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기금들이 선두주자와 후발주자를 보다 공평한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고민해 줬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용보수율을 정상화'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금들은 주간운용사 선정 제안요청서에 추정 보수율을 적는데, 이는 기금이 줄 수 있는 최대 보수를 뜻한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만큼 보수율 상한에 맞춰 기금에 써내는 기업들은 없었다. 나라장터를 통해 공개입찰을 하는 경우엔 보수율의 60% 밑으로 써내면 보수 점수에서 0점을 받게 된다. 사실상 보수율 하한도 60%까지로 정해졌다는 얘기다. 다만 눈치경쟁을 벌이다 보니 60%가 하한이자 상한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는 기금이 전향적인 입장에서 태도를 바꾸길 바라고 있다. 보수율에 대한 배점을 낮춘다든지, 기존 60%의 기준을 80% 수준으로 늘린다든지 하는 방안을 기금에게 권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운용보수율 정상화와 함께 '성과보수체계의 적극 도입'도 해결책으로 꼽힌다. OCIO의 보수는 크게 운용보수와 성과보수로 나뉘는데, 국내에선 성과보수가 거의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인센티브 격인 성과보수는 벤치마크 수익률 대비 달성한 초과수익률 만큼 운용기관에 주어진다. 운용보수만으로는 수익성을 챙기기 어려운 증권사, 운용사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전망이다.

전담 운용체계를 취하지 않는 것도 기금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금별로 전담 인력을 20~40명 배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기존의 관행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운 비용 대비 비효율적인 구조라는 평이다. 한 운용사 OCIO 담당 부장은 "각 운용·증권사가 내부에 단순 운용과 하위펀드 선정, 성과평가, 위험관리 등 일반 자산운용 업무를 하는 10명 미만의 인력을 둔 뒤, 나머지 인력들을 각각의 기금에 대한 전담 인력으로 배치해 운용목표 설정, 컨설팅 등을 맡게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위탁운용 기간 자체를 늘리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국내 OCIO가 해외 대비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는 짧은 계약기간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내 OCIO의 계약 기간은 통상 4년 수준인데, 해외에선 10년 이상 같은 OCIO에 자산운용을 위탁하는 사례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계약 기간이 짧으면 손실이 발생했을 때 만회하기 어렵다. 양호한 성과평가를 받기 위해 손실을 회피하는 보수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류두진 성균관대 교수는 "계약 기간이 짧으면 장기간에 걸친 투자의사 결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국내 OCIO 시장에서 수요자인 기금의 인식과 재계약이 잘 이뤄지지 않는 풍토를 개선해 기금과 OCIO 사이에 장기적인 협력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운용기관들의 불만을 기금들이 항상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말까지 6개월간 연구를 진행해 △주간운용사 겸임운용 허용 △완전위탁형 성과보수제 도입 △사업기간 연장제도 도입 등 운용기관 여건 개선을 골자로 한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위탁자가 연구용역 등을 통해 OCIO 시장 발전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운용·증권사들도 결국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힘을 줄이기 마련이다. 기금이 기업들에 대한 성의를 보일수록 OCIO 서비스의 질도 동반 상승할 것"이라며 "응당한 대가 지불이 양질의 서비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시장 성장의 핵심이 될 듯하다"고 밝혔다.
업계 의견 수렴할 협회 나와야…'퇴직연금'엔 제도개선 필요
아울러 정부와 업계 스스로도 시장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보수율과 전담체계 등 시장의 케케묵은 불만들이 학회 테이블에서만 논의될 뿐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며 "법정협회인 금융투자협회 산하에 OCIO 관련 기구를 만들어 업계 의견을 즉각 수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결은 다르지만 '업종별 협회 중심의 OCIO 시스템 구축'을 제안한 목소리도 나왔다. OCIO를 도입하고자 하는 민간기업들을 위한 방안이다. 철강 업종이면 협회, 게임 업종이면 게임산업협회가 OCIO 전반의 업무를 위임 받아 회원사들의 자금 운용과 관리를 도와주자는 얘기다. 신중철 에프앤가이드 고문은 "수많은 기업들이 비용 문제로 OCIO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회 차원에서 내부에 기금을 다룰 수 있는 전문 조직을 두고 산하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대리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부시장인 퇴직연금과 관련해서도 제언이 나온다. DB형 적립금의 원활한 시장 유입을 위해선 퇴직연금 운용 규제 완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아직 일임위탁은 퇴직연금 운용 수단으로 허용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까지 OCIO 시장으로 들어온 2조원 규모 DB 적립금이 모두 사모펀드로 설정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기업들로선 사모단독펀드의 설정이 허용되지 않아 대형 사업장이 단독으로 OCIO 위탁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일임위탁 허용 등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끝)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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